
88CC 에서 부당해고된 조합원과의 인터뷰 2008-11-03
수칙위반, 부당노동행위, 노조탄압, 흔들어도 나는 버틴다!
새벽 무렵 내린 비로 세상은 젖어있었다. 비를 머금은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그 아침에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 앞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경기보조원 복장에 피켓 두 개를 앞뒤로 둘러맨 정연호 조합원을 만났다.
지난 9월 15일, 경기팀장이 경기진행이 느리다는 것을 이유로 고객이 있는 자리에서 경기보조원에게 고함을 질렀고, 기분이 상한 고객이 회사에 항의한 것이 이유가 되어 애꿎은 경기보조원이 징계를 받았다. 처음에는 출장 정지였다.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차마 듣지 못할 폭언을 들어야했고 사측에서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경기보조원을 무기한 출장 정지시켰다. 이것이 정연호 조합원이 보훈처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1인 시위를 한 것을 이유로 정연호 조합원을 제명시켰다.
하지만 경기진행이 느린 것은 경기보조원의 탓이 아니다. 경기속도가 너무 느릴 경우 경기보조원이 전체적으로 원활한 경기진행을 위해서 조금 더 경기를 빨리 진행할 것을 고객에게 권유할 수는 있지만 경기속도가 느린 이유는 대부분 고객의 실력이나 성격, 상황과 관계된 것이라 경기보조원이 재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예전에는 88CC에 이와 관련한 경기보조원에 대한 징계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이유로 92년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새로 사장이 취임한 후 88CC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었다.
“이번 제명 사건 이후로 현장 봉사(일당 없이 경기의 진행 등을 도움)가 많아졌어요. 일종의 벌당이죠. 경기진행이 느린 경우가 3번 되면 현장 봉사를 내보내요. 경기진행 느린건 고객의 경기 스타일이지 언니들 책임은 아니에요. 뭐 한 두 번 말할 수는 있겠지만 골프치는 고객들한테 자꾸 빨리 치시라고 얘기하고 끼어들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골프 즐기러 온 분들이.” 시위를 대신해 줄 수는 없어도 시간만 나면 정연호 조합원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김은숙 분회장이 최근의 분회 현황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이런 일들이 다 사장이 바뀌고 나서 생겼어요. 골프카 리모콘(경기 중에 옮기는 곳마다 골프가방을 실어놓은 골프카를 리모콘으로 작동시켜 대기시킴)을 주지 않아서 필요할 때마다 급하게 뛰어다니느라 갑자기 근육을 쓰니까 다치기도 해요. 이전엔 없었던 일들인데….”
부쩍 늘어난 협박과 폭언에도 분회는 이제 그런대로 분위기를 추스리고 있나 보다. “조합원들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어요. 굉장히 결속력 있어요. 회사가 노조 없애겠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잘 버텨주고 있어요. 회사가 흔들면 금방 나갈지도 모른다는 언니들의 걱정과 다르게 작년, 올해 신입들이 잘 버티고 있어서 굉장히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안에서 잘 버텨주고 있어 밖에서 기운을 낼 수 있고 밖에서 투쟁하는 모습에 안에서도 더 더 힘을 내는지 모른다. “오전에 시위하고 나서 밥 먹고, 점심까지는 차안에서 자요. 점심시간 되면 또 나가죠.” 정연호 조합원의 요즘 하루일과다. “오후 시위가 끝나면 집에 가요. 개인적으로 볼 일이 있으면 보고, 아니면 낮잠을 좀 더 자요. 아이들 맞고, 저녁준비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또 자야 돼요. 새벽 5시 좀 넘으면 일어나야 되거든요.” 시위 하면서 보내는 하루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인 듯했다. 그러나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무슨 힘이 들 게 있느냐’는 표정이다. “그런 전화를 참 많이 받았어요. 대단하다. 참 잘 버틴다. 나 같았으면 바로 다음날 그만두고 나왔을 텐데 하는. 그런데 정말 힘들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소득이 없어서 그건 좀 그렇지만 시위하면서 힘들거나 눈치 보이거나 하지는 않아요. 다시 돌아가야죠. 계속 일하려고 이렇게 시위하는 건데요.” 한 달 넘게 혼자서 시위하느라 몸도 마음도 얼마쯤은 지치지 않았을까 했던 걱정이 부끄러울 정도로 태연한 목소리였다.
사측은 국정감사에서 ‘불법노조’, ‘노동자가 아니다’며 지난 8년간 활동을 해왔던 분회의 역사를 부인하며 노조의 교섭 공문에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노조활동.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노조활동을 하고 싶어요. 선진국처럼 더 넓은 범위의 노조활동이 인정되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어서 이런 부당행위나 불법적인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정연호 조합원. 그런 그에게 힘을 보태고자 분회에서는 투쟁기금을 마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조합원들에게는 그저 너무나 고마울 뿐이라는 그의 얼굴을 보며 경기보조원의 법적 권리가 하루빨리 정립되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노력해왔지만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법적 장치는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노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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